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다카 마이 (문단 편집) === 아이돌이었던 과거 === 은퇴하기 직전까지 '''[[국민드립|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던 [[세계관 최강자|일본 아이돌계의 대표자격인 슈퍼 아이돌]]이었다. 아이와 비슷하게 13세에 데뷔해서 약 3년 정도밖에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아이돌 얼티메이트에서 우승도 해 봤고[* 우승했을 때 받은 트로피를 보란 듯이 거실에 장식해 놨다는 설정.] 1집부터 5집까지 5연속 밀리언셀러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아이돌 마스터 세계관에서는 거의 [[넘사벽]]급의 전설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천재이면서 운도 따라준 케이스였던 모양. 본인도 자신의 현역 시절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서 자기가 넘어야 하는 건 자기가 이전에 세웠던 기록뿐이었다고 말한다던가, 아이돌 마스터의 여타 히로인들이 겪는 "라이벌과의 대결" 같은 걸 '''전혀 겪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현역 시절 이야기들을 잊을 만하면 늘어놓는다. 은퇴 이유도 3년 동안 자신을 대적할 만한 라이벌이 아무도 없었기 따문에 '''아이돌 생활이 시시해져서''' 더 재미있는 일을 찾으려는 목적이었고 그 결과가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인기절정의 국민 아이돌이었다가 때이른 결혼으로 돌연 은퇴 코스를 밟는 컨셉은 [[쇼와]] 3대 가희 중 한 사람이자 [[꽃의 중3 트리오]] 중 한 명이었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커리어를 따 온 것으로 보인다. 1973년 데뷔한 뒤 인기 최정상의 아이돌로 활동하다가 1980년에 21살의 나이로 결혼발표를 하며 전격 은퇴한 케이스다.] 아이돌에 대해선 '꽃과 나비처럼 귀여움받는 동경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활동도 '''본인의 아름다움으로 매료시켜 대중들을 무릎꿇게 하고 그 위에서 군림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으며(...) 총리대신이나 인간문화재 같은 사람들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뭐 이 정도면 완벽하게 '''[[여왕님]] 캐릭터''' 확정이다. 반대로 예능 활동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어서 예능돌로 데뷔하려던 아이에 계획을 정면으로 반대했으며 '아이돌이 버라이어티 활동에 나가서 별종(イロモノ) 취급을 받으면 두 번 다시 아이돌로써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일갈해 버릴 정도다. 요즘에는 아이돌이 버라이어티쇼를 나가는 일이 자주 보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버라이어티는 안팔리는 아이돌/마이너 아이돌이 일단 얼굴이나 알리려고 겨우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사실 현실의 아이돌로 갈 것도 없이 [[아이돌 마스터]] 자체가 [[키사라기 치하야|72]]라던지, [[아마미 하루카|하루각하]]라던지, [[가나하 히비키|왕따 네타]]라던지 과도하게 [[네타 캐릭터]] 취급 당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팬덤 상황을 보면 나름 핵심을 찌른 이야기다. [[프로듀서(아이돌 마스터 팬)|프로듀서]]들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화두로 떠올랐다. [[346 프로덕션]]의 [[미시로 상무]]의 발언과 의도가 부각되면서 마이의 이 발언을 비롯해 과거부터 아이마스에서 오가던 "예능인"과 "아티스트"의 경계에 대한 요소들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발원지가 아이마스 [[미디어 믹스]] 중 가장 네타성이 짙고 둘 중에서 예능계 아이돌을 선택한 [[신데마스]]라는 점이 크기도 하지만 [[니코마스]] 시절부터 마이를 통한 이런 고찰이 조금씩 있어 왔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여담으로 반대쪽을 선택한 쪽은 [[밀리마스]].[* 여기에 상무 본인도 상당히 나이를 먹은 중년이라는 점이 겹쳐 사실 미시로 상무도 마이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 받았다는 식의 2차 창작도 존재한다(...).] 그런데 정작 마이 역시 (가상 캐릭터라고 쳐도)훌륭한 네타 캐릭터다. 아이에게 '''"별종이 된 공포를 맛보라"''', '''"과거의 참극"'''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아마도 버라이어티에 나와서 웃음거리가 된 과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이 본인이야 이런 사실을 부인하겠지만, 마이의 지금 행적만을 봐도 유추할 수 있듯이 과거에 어마어마하게 충공깽한 예능 캐릭터()였던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오토나시 코토리]]의 고등학교 시절을 다룬 [[아침놀은 황금빛 THE IDOLM@STER|아침놀은 황금빛]]에서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은퇴한 걸로 나오며 마이의 은퇴로 인해 아이돌 업계가 침체기의 수준을 넘어 빙하기로 접어들었단 설정이 붙었다.[* 코토리가 아이돌이 되기로 마음먹기 전에 친구들과 나눈 얘기를 보면 TV에도 아이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시장의 유행은 아티스트계로 완전히 넘어갔으며 [[쿠로이 타카오|쿠로이]]는 [[높으신 분]]들이 아이돌과 관련된 컨텐츠를 [[화전(농업)|화전]]같이 뒤도 생각하지 않고 캐먹으면서 시장을 망쳤다고 욕을 할 정도로 업계가 완전히 망가진 상황이었다. 마이의 은퇴는 [[마그나카르타 눈사태의 망령|이미 망조가 들은 업계에 결정타를 꽂은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후 아이돌마스터 본편에 와서야 아이돌 붐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10여년에 가까운 침체기가 이어진 셈이다.[* 여담으로 일본의 음악업계의 흐름을 어느정도 반영하는 아이마스답게 현실에선 마이의 모티브로 예상된 야마구치 모모에의 은퇴 이후 실제론 10여년의 간격이 있긴 하지만 90년대에 아티스트의 유행이 시작되면서 아이돌 업계의 침체기가 계속돼 정통 아이돌의 시기가 끝났으며 이후 딸인 아이가 활동하는 시기는 AKB48을 위시로 한 성장형, 예능 지향형 아이돌의 시기가 되었다.] 이 설정 때문에 코토리가 히다카 마이와 같은 세대에 활동한 거 아니냐는 가설은 빗나갔다.[*스포일러 덤으로 아침놀은 황금빛에서 결말이 나왔는데 타카기 준지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 코토리는 아이돌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은 애초부터 아이돌이었던 적이 없었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